실리콘밸리의 철학자 랜디 코미사의 책 ‘승려와 수수께끼’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다. 이 책은 비즈니스 뿐만 아니라 어쩌면 인생의 본질을 가르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 ‘승려와 수수께끼’에서 랜디 코미사는 창업에 관해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러 찾아온 레니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경험상, 만약 돈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한다면 닭 쫓던 개 신세를 면치 못할 겁니다. 돈은 결코 그렇게 따라오지 않아요. 뭔가가 더 있어야 합니다. 실패하더라도 이 일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을 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한단 말입니다.”
실패하더라도 이 일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위대한 기업을 만들고,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 창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랜디 코미사의 말에서 돈을 다른 ‘위대한 기업’, ‘위대한 사람’으로 치환해보면, 나도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창업이 목적이냐, 수단이냐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나에게 있어서 창업은 두말할 것 없이 수단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저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실패할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 시작도 안했지만, 나 역시 창업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꾸준히 준비하고 있고, 가능하면 빠른 시일내로 시도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뭔가가 더 있어야 한다니.
그러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과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 책을 읽으면서 처음 창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아산상회를 통해 나와 비슷한 꿈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을 때,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없는 아이디어와 조악한 장표를 가지고 VC들앞에서 피칭을 했던 때, 동료들과 팀의 그라운드룰을 만들기 위해 늦게까지 이야기했을 때, 베를린에서 커뮤니티 구성원들과 서로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을 때, Specific한 스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웹 프론트엔드 JavaScript와 Vue, React를 공부하고, 크립토에 관심갖게 되서 스터디에 들어가 이것저것 리서치하고 Golang이나 Solidity도 공부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
다시 질문해야겠다. 지금까지 해온 이것들은 목적이었을까, 수단이었을까. 역시 수단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다보면서 느낀 점은 이런 것들이 재미있고,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되고, 실패하더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시간과 노력을 쏟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간절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이것 자체로 의미가 느낀다는 것이다. 어쩌면 위대한 기업을 만들지 못하게 되더라도, 지금하고 있는 이것들,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는 충족감,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나의 삶은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물론 나는 계속해서 시도할 것이다)
승려와 수수께끼는 그 제목처럼 책의 시작과 끝에 수수께끼와 그 수수께끼의 답이 나온다. 어쩌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지만 그냥 적어보겠다.
책의 저자 랜디 코미사는 오토바이를 타고 미얀마를 여행하던 중에 한 스님에게 자신을 태워다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코미사는 승낙했고 한참을 달려 스님이 데려다 달라고 말했던 곳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런데 도착한 스님은 다시 처음 만났던 곳으로 다시 데려다 달라고 했고, 코미사가 어처구니 없어 하던 그때, 그곳에 있던 다른 스님이 낸 수수께끼였다.
“계란을 1미터 아래로 떨어뜨리면서 계란을 깨뜨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정답은 계란을 1미터 위에서 떨어뜨리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나는 이 수수께끼의 답이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여행이고 여행은 그 자체가 주어지는 보상과 같다. 여행을 다녀와서 집에 도착했을 때 후련함보다는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것과 같고, 무언가를 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삶을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의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삶은 여정이고, 나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이 여정이 끝나는 것이다. 이 여정이 끝나기 전까지 삶의 모든 것은 과정이고, 나는 그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다보니 승려와 수수께끼 독후감이 되어버렸는데, 아무쪼록 나의 이런 생각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